오늘은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밀라노 프랑스학교의 조금 특별한 영어 수업, ELCE(영어 심화반) 신청 경험을 나눠볼까 해요. ^^ 프랑스학교에서 웬 영어 심화반이냐구요? 저도 처음엔 그랬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더라구요.

밀라노 프랑스학교의 특별한 영어 수업, ELCE
밀라노 프랑스학교에서는 중등 2학년(5ème)부터 아이들이 선택과목을 고르게 돼요. ELCE(L’ Enseignement de Langues et Cultures Européennes)라는 유럽언어 및 문화 교육 수업과 라틴어 수업 중 하나를 택하는 거죠. 물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ELCE란 무엇일까요?
ELCE는 단순히 영어를 더 배우는 보충이나 강화 수업은 아니에요. 학교에서도 이 점을 꽤 강조하더라고요. 정규 영어 수업이 주당 3시간인데, ELCE는 여기에 주당 2시간이 추가되는 방식이에요. 총 5시간을 영어 관련 수업에 할애하는 거죠. 목표는 영어를 문화적, 시사적 맥락 속에서 더 깊이 이해하고 배우는 데 있어요. 단순 문법이나 어휘 암기를 넘어선, 살아있는 영어를 접하는 기회랄까요?
누가 신청할 수 있나요?
모든 학생이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몇 가지 조건이 있더라구요. 스픽 할인 * 영어 이중언어 구사자 (영어권 국가 출신이거나, 해당 국가에서 오래 살았거나, 영어로 교육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 * 영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높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학생 * 고등 1학년(3ème)까지 꾸준히 이수할 의지가 있는 학생
이 조건에 해당해야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 거예요.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었답니다!
이때 선택한 과목은 고등 1학년(3ème)까지 쭉 이어지고, 나중에 대학 시험을 볼 때 가산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경쟁도 제법 치열한 편입니다. 보통 한 학년에서 20명 정도 신청하면, 최종적으로 약 10명 내외의 학생만 선발되거든요. 꽤 까다롭죠?
첫째 아이의 두근두근 ELCE 도전기!
작년 5월, 첫째 아이가 ELCE 수업 신청을 했어요. 당시 아이가 정규 영어 수업이 너무 쉽다고 느끼고 있어서 고민이었는데, 마침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니 정말 반가웠죠.
신청 자격, 우리도 해당될까?
저희 아이는 영어권 국가는 아니지만, 인도에서 3년 동안 영어로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었어요. 다행히 이 조건 덕분에 신청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답니다. 안내 메일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어요!
면접 준비 대소동!
신청서를 냈다고 끝이 아니었어요. 6월 초에 담당 선생님과 개별 인터뷰를 봐야 했고, 성적과 생활기록부 평가도 거쳐야 했죠. 첫째 아이는 평소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좀 있었는데, 막상 면접 날짜가 다가오니 엄청 긴장하더라구요.
“엄마, 다른 애들은 영국 살다 오고, 미국 오래 살다 온 애들이래요. 아빠가 미국 사람인 애도 있다는데… 나 떨어지면 어떡하죠?” “떨어지면 뭐, 라틴어 해야지!” (사실 속으로는 저도 좀 떨렸어요 ㅎㅎ) “아, 괜히 떨려요~”
아이 긴장을 풀어주려고 예상 질문을 만들어 함께 연습했어요.
“영어를 어디서 공부했냐고 물으면?” “음… 인도 뉴델리요! 학교에서 배웠다고 할래요.” “부모님이랑 영어로 대화하냐고 물으면?” “음… 안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주로 한국어로 하지만 영어로도 가끔 한다, 아니면 아빠랑은 영어로 한다고 해야지!” “왜 ELCE 반에 들어오고 싶냐고 물으면?” “음… 영어를 더 잘하고 싶어서요?” “그건 너무 평범하지 않아? 좀 더 생각해봐.”
아이는 한참 고민하더니 결국 인터뷰에서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고 해요.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영국에 가고 싶어서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네요. 아이고… 정말 진실되게 봤구나 싶었어요.
합격!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시련?
다행히 면접을 잘 봤는지, 첫째 아이는 무사히 영어 심화반에 합격했어요!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어서 아이도 무척 기뻐했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시련이 있었으니… 첫 수업 주제가 ‘할리우드’였는데, 글쎄 아이들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는 거예요! 남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인데 말이죠. 영어 시간에 웬 연기냐며 투덜댔지만, 저는 속으로 오히려 잘됐다 싶었어요. 내성적인 성격을 조금이나마 깰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연기 점수는 아주 낮게 받았다고 합니다…)
ELCE 수업, 실제로는 어떨까?
연기 외에도 ELCE 수업에서는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창작 글쓰기, 영어 스피치 대회 참가, 영어 연극 공연, 밀라노 일본 학교 학생들과 영어 펜팔 교환, 좋아하는 영어 책 발표 등등. 물론 기본적인 단어 시험이나 어휘 시험도 보고요. 이런 활동들을 통해 아이는 영어를 더욱 즐기게 되었고, 함께하는 친구들과도 부쩍 친해졌답니다.
둘째 아이, 선배 따라 ELCE 문을 두드리다
그리고 올해, 둘째 아이 차례가 되었어요. 얼마 전에 둘째 아이의 ELCE 신청서를 제출했답니다.
둘째는 오빠의 경험 덕분인지, 벌써부터 인터뷰 걱정을 하며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다니더라구요.
“엄마, 엠마(친구 이름)가 그냥 ‘영어를 더 잘하고 싶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게 제일 좋대요. 자기도 그렇게 말해서 붙었대요!” “음… 그건 너무 식상하지 않을까? 엠마는 원래 영어를 잘하잖아.” “그렇긴 한데… 그럼 난 뭐라고 하죠?”
면접까지 두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니, 이것 참… 둘째 아이 역시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해서, 떨어지면 창피할 것 같다고 하네요.
걱정하는 아이에게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해줬어요.
“걱정 마, 네가 첫째 동생인 거 선생님들이 다 아셔. 넌 오빠 덕 좀 볼걸?” “오빠는 오빠고, 나는 나죠!” “그래도 그게 아니야. 오빠가 잘하면 선생님들은 너도 좋게 봐주시는 경향이 있어. 가족이란 게 원래 그렇고, 너희가 잘하면 한국 사람 전체를 좋게 보는 거야. 이 학교에 한국인은 너희 둘뿐이니 어쩔 수 없이 대표성을 띨 수밖에 없어. 그러니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욕먹지 않아.”
제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에요. 너희가 잘하면 엄마 아빠가 칭찬받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칭찬받는 거라고요. 다행히 아이들도 이 부담감을 잘 이해하고, 오히려 유일함을 즐기는 듯 보여요. 얼마 전 교사 면담 때 영어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수업 태도가 정말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답니다.
둘째 아이는 인도에서 미국 친구 카야와 영어로 대화하며 쌓았던 우정이 깊었는지, 밀라노에 와서는 같은 반에 영어로 편하게 대화할 친구가 없어 아쉬워했어요. 부디 이번 ELCE 심화반에 들어가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즐겁게 영어를 사용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둘째 아이의 인터뷰 준비를 슬슬 시작해야겠어요. 첫째 때처럼 예상 질문도 만들어보고, 아이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죠. 두 아이 모두 프랑스 학교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또 감사합니다.
인터뷰 준비 시작!
과연 둘째는 인터뷰에서 어떤 대답을 할지, 또 어떤 활동들을 하며 성장해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혹시 밀라노나 다른 해외 프랑스 학교에 자녀를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ELCE 프로그램에 대해 한번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분명 좋은 경험과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또 재미있는 학교 이야기로 찾아올게요.